무엇보다 한국서지라는 아이템을 찾으셨던 이야기는 몇번을 들어도 근사한 이야기었어요. 저는 한국서지가 백년동안 선생님이 꺼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게 아닐까하는 상상도해요. 지금도 선생님이 하신 작업들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고는 합니다. "모두에게 주목받을 필요가 없다.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알아주면 그만이다" 말씀하셨어요. 왜 그렇게 겸손하셨을까요? 누구든 붙잡아서 설명해주고 보여줄만한 굉장한 작업이었는데요, 저 조차도 그땐 잘 몰랐나봐요 선생님.
선정언니가 처음에 모리스꾸랑이 정말 선생님 남편인줄 알았다고(모리스꾸랑이 전생의 남편이라는 농담을 자주하셔서)..."교수님은 외국인이랑 결혼하셨나봐..."라고 생각했던 일. 또 주관식 채점하는데 정답 "직지심제요절"에, 어느 학생이 "한국서지"라고 써놓은 것도요. 조그만 베이커리만 들어와도 조각조각내서 모두가 나누어 먹었잖아요. 초콜렛이 들어오면 제가 실험삼아 시식을 하곤해서 절 "초콜렛 모르모트"라고 부르시기도 했는데... 참 사소한 일에도 다같이 깔깔 웃으면서 지냈나봐요.
선생님, 일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너무 신기하고 이상해요.
저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를 못 지우고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예술자료원도 합격하고 외교부도 합격했습니다, 내일부터 외교부에 출근합니다.” 이런 내용이었어요. 병원에서 영옥 선생님이 읽어 드리니까, 선생님께서 들으시고 무척 좋아하셨다고...오전에 그 소식을 들으시고, 오후에 가수면 상태로 진입하신거라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 갓 입사해서는 정신이 황망해서 회사를 엉망으로 다녔답니다. 여쭤볼것도 너무 많고, 고민되는 일들도 있었는데...그럴 때마다 학교 다닐 때처럼 선생님께 쪼르륵 달려가서 일러바치고(?)싶었어요. 그럴때마다 "선생님이 계셨다면, 나보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셨겠지"하면서, 나름 가늠해서 추스리곤 했어요.
또 선생님 꿈도 정말 자주 꿨어요.
저는 한번도 꿈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말씀을 듣거나 하진 못했는데요...글쎄 나래언니는 꿈에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대요. 선생님께서 아주 예쁘게 치마를 입으시고(평소엔 치마 안 입으셨잖아요), "이제 아프지도 않고, 편하고 좋다"고 하셨대요. 그말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놓이더라고요. 저는 철딱서니가 없어서 그런지 꿈에서도 울고, 울면서 깨고 그랬답니다.
선생님 잃은것을 너무 힘들어하니까, 주변에서 의아하게 생각하더라구요. 어느날 점심시간에 명화언니랑 점심을 같이 먹은적이 있어요. 서울역사박물관이랑 외교부가 가깝잖아요...근데 언니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지도교수님이 돌아가셔서 힘들어하는것을 주위에서 잘 이해를 못하더라고...
명화언니가 그러더라구요. "어떤 부분에서는 (선생님을) 부모님보다 더 의존하고 가까웠다"고...
선생님. 저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선생님만큼 사랑하고 존경했던 분이 있을까요...
선생님과 나눴던 그 밀도 높은 시간들, 사랑들. 우리의 친밀감. 신뢰. 깊이...그런것들을 어떻게 설명하고 꺼내어 보여줄 수 있을까요?
제주도 본가에 돌아와서, 제가 대학원 졸업할 때 선생님이 주셨던 편지를 발견했어요.
"지수가 어디에 있든 항상 천리안으로 지켜보겠다."고 써주셨어요...선생님 보고 계시죠?
무슨 일을 하건, 어떤 모습이건 간에 선생님 뵙기 부끄럽지 않게 지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는 합니다.
회사에서도 "내가 이런 것까지 해 줄 필요 있을까?"생각하다가도, 내가 교수님 제자인데, 우리 연구실에 부끄럽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더 찾아서 일 하기도 했고요..."이런 남자, 선생님께 소개 시켜줄 수 있나?!" 해서 그 기준으로 남자친구 가려내기도 하고요.
저 이런 생각 정말 많이 하는데, 여전히 허당이라고 지켜보시면서 웃고 계실 것 같아요.
교수 퇴임 이후엔 내 사이트를 만들어서 특파원 때 기사들도 모으고, 수필글도 연재하고, 홍은원 감독 다큐멘터리도 직접 제대로 만들고 싶다고…하고 싶은 일 리스트가 있다고 자주 말씀하시곤 했는데...그리고 지수가 결혼한다면 제주도도 한번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셨잖아요. 너무 아쉽기만 해요.
늘 그립고, 보고싶어요 선생님...선생님 곁에서 보낸 그 짧은 시간이 저에게는 너무나 애틋하고 또 완벽한 시간이었답니다. 따뜻한 사랑 주셨던 것 항상 기억할게요. 여전히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항상 우리를 지켜봐주세요.
지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