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유사하게 다른 연구자 이찬은
수치심이 인간다움의 포기에 반대하는 내면의 소리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유교 전통에서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란
곧 자신의 선하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고
그에 대해 고통스러워 하는 양심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것이죠.
신은화는 유교적 수치심, 수오지심이
자기 자신의 결함과 잘못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이라고 보았으며, 이것이 도덕의 성립에 기여한다고 설명합니다.
요컨대 그는 수치심을
자신의 도덕적 결함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자
선한 본성을 자극하고 성장시키는 마음의 토대라고 이해했습니다.
수치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도덕적 실천과 수양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지수] 수치심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거네요
[이재] 신은화의 분석에 따르면 맹자의 수오지심은
자신 또는 타인의 도덕적 결함이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서 도덕적 실천의 토대가 됩니다.
이는 누스바움이 분석한 원초적 수치심과 다른 이해이죠.
누스바움도 건설적 수치심의 가능성을 인정하고는 있어요.
하지만 수치심이 건설적이기 위해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나르시시즘이 배제되어야 하고,
자신의 취약성이 드러난 사건이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의 수치심은 자기 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죠.
누스바움이 수치심의 부정적 역할과 기능에 주목하여
공적 영역에서의 수치심 발현을 경계했다면,
유교 전통은 수치심이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고
수양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 중점을 뒀다는 데에
둘 사이의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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