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읽기 (4)
철학박사와 함께 읽는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
수치심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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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은 2022년 10월
팟빵 추천 에피소드로
선정되었습니다💞
영화 '말레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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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바움이 관심 갖는 문제는
공적인 영역에서 수치심이 법과 제도에 반영되는 일에 대한 것인데요.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관점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정상이 아니라고 분류되는 이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은 유해하므로
법에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수치심 처벌을 강화하여
사회에서 공유되는 도덕적 가치를
사람들이 더 잘 지키게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이에요.
누스바움은 첫 번째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재] 어떤 참고자료가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는 첫 번째 보다는 두 번째를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범죄자에 대한 망신주기를 그만두자고 말하는 건
우리 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처럼 보여요.
정치에서는 포토라인에 세운다라는 말도 있죠.
범죄와 연루되어 수사 대상이 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
그만큼 수치심의 힘은 세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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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 My Concubine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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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바움은 논의를 확장하여
이러한 수치심이 어째서 법적 처벌에 활용되어서는 안 되는지,
즉 사회적으로 왜 수치심 처벌이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지 설명합니다.
그는 다섯 가지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훑어보고 넘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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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처벌에는
모욕을 주려는 의도가 포함되는데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
[이재]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죠.
가장 흔하고 강력한 반론은
왜 우리가 범죄자의 인권까지 배려해야 하느냐?는 것이에요.
우리는 어떤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아니기에 인권도 없다라고 보는 거죠.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런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어떤 철학자들은 특정 윤리적 가치 또는 규칙이나 원리를 논할 때
그것의 보편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권도 그래요.
누구에게는 있고 누구에게는 없는 것이 인권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어쨌든 누스바움은 수치심 처벌은
그의 인격 자체를 부정하고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한 의도가 내재한 것이기에
공적으로 적절한 처벌 방식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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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처벌은 여론재판과 같은 모습을 띤다
여론재판은 공평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중립성이 담보되지 않고,
심의를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러한 방식의 처벌은 부당하다고 지적합니다.
누스바움이 여론재판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여론을 형성하는 기저에 비이성적인 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론을 만드는 자들은 자신들을 정상인으로 규정하며
타자를 비정상적대상으로 정립합니다.
사법정의에서 요구하는 많은 가치들이 배제되기에
여론재판의 형식을 띤 수치심 처벌은
시민사회에 적절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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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수치심 처벌은
우리가 기대하는 효과를 가져온 적이 없다
누스바움은 우리가 역사적 사례들을 검토해보면
수치심 처벌이 범죄 억제 기능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애초에 수치심 처벌은
정상에서 벗어난 정체성을 지닌 개인 또는 집단과 비교하여
자신들의 정상성을 강조하기 위해 시행된 것이기에
처벌로서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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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처벌이 강력한 억제 효과를 지닌다는 주장에는
경험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정반대 결과를 초래한다
수치심에 동반되는 모욕을 당한 사람들은
자기 반성을 하기 보다는
사회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낼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연약한 자아를 지닌 사람이
수치심을 경함하게 되면
우울증과 공격성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래서 수치심을 강화하는 것은
폭력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키우기 십상이다.
(혐오와 수치심,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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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처벌은 사회 통제망 확대현상을 야기한다
수치심 처벌은 낙인 효과,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등
정치적 긴장을 도모하는 처벌이에요.
수치심 처벌이 강화되는 사회에서
개인 또는 집단은 수치심에 의한 인격 부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정상인의 범주에 두려하고
타인에게 낙인을 찍음으로써
자신이 지닌 (자신이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해소하려 합니다.
나의 정상성을 확보하기 위해
타인의 비정상성을 부각시키려 노력하게 된다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은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사회적 동질성이 강요되고,
통제하기에 용이한 집단으로 변모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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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수치심: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조계원 역, 민음사,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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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바움이 수치심을 법적 처벌에 활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치심 처벌이 인간다움을 훼손하는 것을 의도하는 처벌이기 때문입니다.
수치심은 완전성, 완벽성 및 나르시시즘과 결합함으로써
타인과 자신을 구별짓는 기준이 되고
정치적 위계를 정립하는 데 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사회적 소수자,
특히 외적으로 쉽게 구분이 가능한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과 낙인찍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할 문제입니다.
대개의 경우 수치심 처벌은
공동체 내에서 정상의 영역을 점하고 있는 다수가
특정 기준에 따라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소수를
공동체에서 몰아내거나 길들이기 위해 수행됩니다.
[이재] 지수님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말씀하셨던
말레나의 삶이 수치심 처벌이
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모습을, 비극적으로 잘 보여주죠.
말레나는 2000년에 나온 이탈리아 영화로,
시네마 천국을 감독한 주세페 토르나토레가 연출했고
모니카 벨루치가 주연으로 나와요.
시대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즈음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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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나는 사춘기 소년의 관점에서 이해한
아름다운 여인 말레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말레나의 삶은 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며
기구한 모습을 띠게 됩니다.
말레나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정도로 외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모니카 벨루치이기에
영화내에서 이뤄지는 말레나에 대한 묘사들이
설득력이 있기도 한 거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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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인데,
그가 광장을 가로질러가면 남자들은 그의 미모 때문에,
여자들은 시기와 질투 때문에 모두 말레나를 쳐다봐요.
광장의 모두가 말레나에게 집중하게 되죠.
사춘기 소년인 레나토는 말레나를 처음 보고
사랑에 빠지는 화자로 등장합니다.
레나토는 말레나의 집에 찾아가 그를 몰래 훔쳐보거나
그의 속옷을 훔치는 등 왜곡된 형태의 일방향적 사랑을 보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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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레나토는 말레나와 대화하지 않아요.
오로지 관찰하고
다른 사람들이 말레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하는지 듣는 역할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우리는
일련의 사건을 겪는 동안 말레나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지 못해요.
다만 저런 상황이라면
무엇보다도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레나에게는 전쟁에 참여 중인 남편 니노가 있습니다.
말레나는 니노의 사진을 보며 그를 그리워하는 한편,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어요.
그러던 중 니노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마을에 전해집니다.
그때부터 마을의 남자들이 말레나에게 대놓고 추근거리기 시작해요.
말레나는 마을 남자들에게는 성적 대상으로서,
마을 여자들에게는 질투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들은 레나토가 보고 듣는 것들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기에
정작 말레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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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말레나의 아름다움은
마을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평균으로서의 정상을 벗어나는 것이었고
그러한 특성은 말레나를 철저하게
대상화 또는 타자화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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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의 사망 후, 치과의사 부인과의 소송,
변호사의 성폭행과 결혼 추진 등의 사건을 겪는 동안
말레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이미 말레나가 마을의 유부남을 유혹하고 다닌다거나,
말레나가 매춘을 한다는 등의 소문이 돌고 있었거든요.
이러한 소문은 결국 말레나에게 낙인이 됩니다.
말레나는 더 이상 마을 공동체에 구성원으로서 속할 수 없게 돼요.
그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성적 유희의 대상,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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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공습에 의해 말레나는 아버지를 잃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레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죠.
그리고 실제로 매춘을 하기 시작해요.
이때 모니카 벨루치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담배를 문 모니카 벨루치에게
남자들이 담뱃불을 붙여주려고 하는 장면이죠.
말레나는 나치를 대상으로도 매춘을 합니다.
이때는 마을의 남자와 여자들이 모두 말레나를 비난하기 시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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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나의 비극의 절정은 전쟁 후 찾아옵니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드라마를 보면 가끔 나오는 장면인데요.
나치에게 몸을 판 여성들을
주민들이 공개적으로 처벌하는 일이 말레나에게도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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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보기가 쉽지 않아요.
마을 여성들에 의해 말레나는 광장으로 끌려 나옵니다.
옷이 찢기고 무릎이 까지고 피가나요.
가슴이 드러나고 머리카락을 잘립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는 앞에서요.
말레나는 울부짖죠.
결국 말레나는 마을을 떠나게 됩니다.
(영화는 그 이후에도 남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 부분은 영화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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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로 개미를 태워 고통을 주는 장면이 나와요.
여기서 개미는 말레나가 앞으로 처할 비극을
대변해주는 상징물로 읽힙니다.
말레나를 향한 근거 없는 소문은 말레나에게 수치심을 줘요.
그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놓이고,
공동체로부터 밀려나게 됩니다.
말레나를 상대해주는 건 그를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자들뿐이죠.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그런 남자들로부터도 외면을 받지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말레나는 공동체의 밖에서 대상화된 존재이자
그들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약자로 묘사됩니다.
말레나에게 찍힌 낙인은
영화 종반에가서 그가 왜곡된 정상성을 회복하며
겨우 지워지는 듯 하지만, 말레나의 앞날이 쉽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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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누스바움의 주장은 명료해요.
수치심은 한 인격을 대상으로 낙인을 찍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그들 스스로 경계 밖으로 나가길 바라는 게 수치심 처벌입니다.
말레나와 같은 피해자를 만들지 않으려면
수치심 처벌이 어떻게 인간다움을 파괴하는지에 대한
누스바움의 주장에 귀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수] 제가 슬프게도 이 마을에는 철학자가 단 한명도 없어서,
이런걸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다고.
세상에 철학자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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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박사와 함께 읽는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 팟캐스트 대본입니다.
일부는 생략, 수정되어 오디오와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철학박사 이재님💌 yijae_seogo@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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