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연구자 순주씨와 함께합니다 자살연구자와 함께 읽는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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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청파동살롱 이후 몇년만에 처음 인사드리네요.
숙녀서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다들 잘 지내셨죠?
숙녀서점 오늘 그 첫 시작,
뒤르켐의 자살론을 순주씨와 함께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순주씨를 발견한 경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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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살사망연구를 하면서 알게된 것들"
이라는 제목의 커뮤니티 게시글
자살은 충동성과 공격성이 기반하는 살인 행위로,
자살 사망자의 약 70%가 남성이라고 합니다.
자살을 하면 보통 7명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자살유가족의 자살사망률은 최소 8배 이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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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10월과 11월, 두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발생한
2명의 유명 연예인 자살에 대한
연속적인 보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실제로 2019~2020년에 발생한 청소년과 청년 여성의 자살 급증이
베르테르 효과와 관련이 있다고 연구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2005년도에 이미 한국사회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 보도 후
구체적인 방법까지 모방하여 자살을 시도하고
병원 응급실을 내원하는 환자 수가 증가한 경험이 있습니다.
비교연구에 따르면 여성 유명인 자살 사망 이후 한 달 간
20~39세, 미혼, 사무직 종사 여성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살이 발생한 바 있다고 합니다. 송재룡.(2008).한국사회의 자살과 뒤르케임의 자살론.사회이론,(34),12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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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자살이 발생하게 되면,
언론과 온라인을 통해 자살 동기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자살자의 생애 기록이나 스트레스 상황 등이 언급되면서
자살 사건의 메시지 전달 기능이 극대화되고,
고인에 대한 애도 과정이 매우 공적인 형태로 중계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서라도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하는 청소년과 청년 여성에게
주로 내재되었던 자살 동기를 강화하고
충동적인 자살 시도로 이어지는데 일조한다고 합니다.
2019년에 극단적 선택을 했던 연예인들은
SNS를 통해 평소 사생활의 많은 부분이
대중에 알려져 있었고 친근하게 소통해왔기 때문에,
자살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수용자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의 삶과 유명인의 상황을 동일시할 소지가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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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2021).2019~2020 자살사망자 급증 탐지 분석 - 연예인 자살, 코로나19 그리고 여성.KFSP 리서치 브리프 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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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뒤르켐은 19세기 말의 사회학자입니다
막스베버, 마르크스와 동시대 사회학자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자살론은 1897년 출간된 책인데
그 방법론이나 접근방식이 너무도 현대적이고
정말 어제 난 신문기사라고해도 믿을 정도로
너무나 현대적 학문의 틀을 갖고있어서 충격적...
데이터를 만들고 해석하는 방법에서 정말 시대를 앞서나갔다...
접근이나 인사이트가 너무나 현대인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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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론, 에밀 뒤르켐, 청아출판사,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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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르켐의 자살관에 기초해서 본다면,
우울증과 같은 개인적 변인들에 종속된 것처럼 보이는
자살행위는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문화적 집합 세력의 영향을 받아 수행된다고 봅니다.
한국사회의 자살 원인의 80%가 우울증이라고 진단하고
정신심리학적 접근의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시각에는 그 우울의 발현이나 심화와 관련있는
사회의 ‘집합적 경향’에 대한 통찰은 빠져있습니다.
이 집합적 경향이 바로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우울증을 낳는 개인적 경향의 원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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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르켐은 26,000여 건에 달하는 자살 사례에 따른 조사 분석을 통해
자신의 가정이 현실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그는 조사 연구를 통해 자살의 경향은
사회 통합력과 구속력의 높고 낮음의 정도에 따라
함수적 관계를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뒤르켐의 자살 분석은 그의 사회학적 가정, 정의 및 방법론을 현상적,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습니다.
그 사회의 구조성을 반영하는 집합적 경향을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다는 뒤르켐의 통찰은
2022년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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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주씨] 사회의 힘에 대해서
자살률은 사망률보다 각 사회 집단의 특성을 훨씬 더 잘 나타내는 지표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고유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살률이 각 사회의 국민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각 사회의 자살률 서열은 시기가 달라도 거의 유사한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즉, 집단은 제각기 독특한 가속 계수를 지니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해마다 바뀌지만 자살자 수는 사회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오랫동안 일정하다. 파리의 주민은 매우 급속하게 교체된다. 그러나 프랑스 전체 자살자 중 파리 주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변화가 없다. 군대의 인원이 완전히 바뀌는 데는 불과 몇 년이면 충분하지만 한 나라에서 자살한 군인의 총 수는 별로 바뀌지 않는다. 어느 나라든 집단생활의 전개는 연간 일정한 리듬을 따른다. 1월에서 7월까지는 증가하다가 그 후에는 점차 감소한다.
그러므로 집단이라는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집단 경향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자연적 힘과 마찬가지로 종류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실재하는 힘이다. 국민성의 구성 요소에는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도 포함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사물을 밝게 보게 하거나 어둡게 보게 하는 기질, 사람들을 애수에 빠지게도 하고 명랑하게도 하는 기질은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기질이기도 하다.
사실상 사회만이 삶의 가치에 대해 집단적 견해를 전승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개인은 무력하다. 개인은 자신과 자신의 좁은 활동 범위 밖에 모른다. 따라서, 개인의 경험은 보편적 평가의 기초가 되기에는 너무나 제한적이다.
반대로 사회는 사회 자체에 대한 느낌을 보편화해서 말할 수 있다. 사회는 지금 사회가 건강한지, 건강하지 못한지를 보편화해서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인들은 사회생활을 깊숙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가 병든다면 개인도 감염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앓는 병은 불가피하게 개인들도 겪는다. 사회는 전체이기 때문에 사회의 병은 각 부분에 전염된다.
따라서 사회가 해체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생활을 위한 정상적 조건이 손상된다는 것이다. 사회는 우리의 보다 나은 자아가 의존하는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우리의 활동이 무의미하다는 인식 없이는 사회를 떠날 수 없다. 우리는 사회의 작품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무가치한 작품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한 사회 자체의 퇴락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경향은 집단적이므로 그 집단적 기원 때문에 개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권위를 갖게 되며, 사회의 해체 때문에 이미 개인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뇌를 더욱 가중시킨다. 그러므로 개인이 극단적 열정으로 사회적 환경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순간에도 여전히 사회의 영향에 굴복하는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개체화된다고 해도 언제나 집단적인 무언가가 남는다. 지나친 개인주의로 인한 우울과 의기소침도 그 한 예다. 개인이 서로 유대를 맺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는 슬픔을 나눔으로써 유대를 맺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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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주씨]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을 영원히 불행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비합리적인 희망을 가질수도 있으며 아무리 비이성적인 희망이더라도 그 자체가 쾌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으로 일시적으로는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끊임없는 좌절을 겪으면서도 무한히 유지될 수는 없다. 인간이 유지 가능한 상태 또는 어렴풋한 이상에라도 도달할 수 없다면 미래는 과거보다 나을 것이 없다.
더 많이 소유할수록 인간은 더 많은 욕망을 가지게 된다. 충족은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대신 새로운 욕구를 자극할 뿐이다.
그러한 행동이 즐거울 수 있을까?
첫째, 그런 행동은 맹목적인 상태에서만 유용할 수 있다.
둘째, 그런 행동으로 즐거움만 느끼고 고통스러운 불안을 어느 정도라도 진정시키려면 그 무한한 활동이 적어도 방해 없이 손쉬운 것이라야 한다. 그러나 그 행동이 방해받는다면 남는 것은 불안뿐이며 평안을 누릴 수 없다. 그러면 언제든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에 부딪힐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의 생명의 실은 가늘어지고 어떤 순간에라도 끊어질 수 있다.
그러한 결과에 이르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욕망을 제한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욕망이 능력과 조화를 이루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은 욕망을 제한할 수 없으므로 어떤 외적인 힘으로 욕구를 제한해야 한다. 그와 같은 외부적 통제력은 마치 신체가 육체적 욕구를 통제하는 것처럼 정신적 욕구를 통제해야 한다.
이러한 조정 역할은 사회만이 할 수 있으며 사회 전체가 직접 하거나 사회의 어떤 기구를 통해서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는 개인보다 우월한 정신적 힘이며 개인이 존중하는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
사회만이 법을 규정할 수 있으며 개인의 욕구가 넘을 수 없는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 또한 사회만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계급의 구성원에게 앞으로 제공할 보상 수준을 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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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모순(1998)
진진아.
지난 며칠간 너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했는지, 정작 지금 편지를 쓰는 순간에는 너무 지쳐서 준비했던 그 많은 말들을 떠올릴 힘이 나지 않는다.
나,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봐. (중략)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 사는 것처럼 한번 살아보는 상상도 적잖이 해보았지.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 튼튼한 성곽에 갇혀있었고, 성곽을 부수자니 마음을 다칠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 나 하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나 때문에 그러는 것, 나는 정말 못 견디겠더라.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묵묵히 사는 길도 있는데, 난 그것도 안 돼. 정말 안 돼.
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훨씬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거든. 나는 용기가 없어서, 너무나 바보 같아서, 여러 사람이 크게 다치는 대형사고를 만나면 절대 생존자 명단에는 오르지 못할 위인이라는 것 잘 알아. 그러니 이 죽음도 뜻밖에 만난 하나의 사고라 여기자.
이모의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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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주씨] 리서치브리프를 쓰면서
2030여성의 자살 급증에 대해 오래 곱씹게 되었음.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페이퍼에 쓰진 못했으나,
이런 계기로 이야기하자면...
중략... 방송을 통해 들어주세요🎀
따라서 그것이 주류의 생각이라고 해도,
분명 우수한 가치임에 누구도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어떤 힘 속의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은 필요함.
고요한 상태에서 머리를 비우고,
회사가 한 사람의 인격체라면 나에게 어떤 한마디를 던질런지,
어떤 친구(들)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부지불식간에),
나 역시 어떤 타인의 욕망의 대리인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내 욕망이 아니라면
뒤르켐의 말처럼 사회가 제지하기 전에 스스로
‘포기’라는 방법으로 제지하는 것도 필요함.
또한, 진진의 이모가 이야기한,
자신을 둘러싼 성곽이 정말 그렇게 두꺼운지,
당장 깨부술 수 있는 작은 부분이 있겠는지 두들겨보는
사소한 ‘감지 작용’이 필요함.
마치 열대어를 키울 때 수족관의 물 온도나 식물, 먹이를
섬세하게 살피면서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수조를 살피고, 안에 좋은 것들을 많이 넣어주고,
또 아무렇게나 맘 편히 살 수 있도록 허용해주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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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주씨] 기억에 남는 가슴아픈 사망 케이스를 공유하자면,
부모님은 과거에 이혼을 하셨고, 그 후 엄마와 오빠가 고생을 많이 하면서 20대 여성이었던 고인을 키웠다고 함.
고인은 간호사였고, 여느 상급병원이 그렇듯 군기있는 생활에 적응해야하는 사회 초년생이었음. 언젠가부터 고인은 과호흡이 오고 숨이 잘 안 쉬어질 정도로, 빡센 병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음.
점차 일하면서도 공황발작이 찾아오자 고인은 병가를 내고 쉬게 됨. 이 과정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었으나, 고인이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던 것은 아님. 병가가 끝나고 웃는 얼굴로 감사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였을 것임.
결국 고인은 마음의 병을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했고, 마지막 통화 후 병가가 끝나던 날 극단적 선택을 했음. 그대로 회사를 그만두는 방법도 있었을텐데,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일을 그만두면 또 다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짐이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그녀는 일기장에만 속마음을 적어두었음.
결국 사람이란, 잘 살려고 하지말고, 살 수 있을 만큼 살아야 함. 좀 하찮고 짐스러워져도, 가족을 잃은 유족이 지고 갈 평생의 마음의 짐과 그녀의 일생을 잃은 것에 비하면 실질적 부담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임.
부디 모든 가치의 우선에,
자신의 생존과 평화를 두기를 바람
지수씨와 나는 모든 여성이, 그래 주기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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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편집 중 많은 부분을 생략했습니다💌
팟캐스트 숙녀서점 첫 시작을
순주씨와 '자살론'으로 했기에
애착이 많이가는 에피소드입니다
방송을 통해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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