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of Kathmandu (7)
칼 융(Carl G. Jung)은 차크라가 정신에 관한 상징적인 이론이라고 설명하면서, 그것이 ‘현실적인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오랜 역사에 걸쳐 축적한 수행자들의 수행 결과가 방대한 임상적 정보가 되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는 왜 차크라를 공부할까 (2020)
*발췌, 변형하여 인용합니다 |
|
|
오늘은 차크라에 대해서 쓰려고합니다.
솔직히 전 네팔에 가기전까지는 차크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하타요가를 하다보면 차크라, 나디가 종종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들이 어떤 상징적인 개념인가보다~? 했지 실재하는 것이라고 여기긴 힘들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나요??
이걸 읽고계신 여러분들도 그럴껄요..?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들을 그렇게 쉽게 덥썩덥썩(?) 믿으시나요.. |
|
|
연구자들은 차크라를 ‘신체에 있는 정신 에너지 센터’, ‘심령적 에너지의 소용돌이’ 또는 ‘심령적 중추’ 등으로 부른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과거 인도인들에게 정묘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것으로 여겨졌다는데 있다.
정묘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인도사상을, 그리고 요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할 정도이다. 그들은 인간이 물질적 몸을 가지고 있지만, 정묘체로서의 인간이야말로 탐구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겼다.
인간의 진정한 몸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 물질적 육체가 아니고, 수슘나와 이다, 핑갈라, 그리고 7개의 차크라로 이루어진 에너지 시스템이라고 본 것이다. 정묘체에 해당하는 차크라는 자체로 7개의 차원을 갖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다차원적 신체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차크라를 인체 내의 전봇대나 에너지 변환기라고 부른다.
물질적인 몸(거친체), 에너지 몸(정묘체), 그리고 정신적인 몸(원인체)로 구성된 세 차원의 신체는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는데, 이 상호작용의 교점이 바로 수레바퀴 모양의 차크라라는 것이다. |
|
|
그러니까 저는 차크라가 무엇인지,
그 실체나 개념을 제대로 알기도전에 경험을 먼저 해버렸습니다. 얼마전에 어느자리에서 만난분이 묻더라고요.
따로 차크라를 수행하시거나 공부하신거냐고?
아니라고 저는 제가 상태가 무엇인지도 인지를 못하고?
그 상태로 그러고 돌아다니다가?
운 좋게 구루를 만나고 균형을 맞추고나서야 자각을하게 된거라고요.
이러한 부분은 제가 지(止, concentration)는 발달했는지 몰라도
알아차림(awareness, mindfulness) 그러니까
지켜보고 깨어있음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주의집중력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
|
코스 중에 저녁식사 시간에 우연히 구루를 마주쳤어요.
"불교교리에서 The noble eightfold path(팔정도)를 알지?
그 중에서 Right mindfulness(정념)를 항상 기억해."
그땐 네네, 예예, 그럴께요, 일단 끄덕끄덕 대답했는데
후에 수련을 계속하면서 이러한 저의 치우쳐짐이
재능이면서도 동시에 약점이란걸 알게됩니다. 종종 나타나는 저같은 사람들 때문인지
아즈나 차크라를 먼저 각성시켜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합니다. |
|
|
*이러한 이유로 이번편은 제가 무료로 전체공개로 발행해요. 혹 저와 유사한 경험을 하셨거나 방법을 찾지못한 분들
우연이건 혹은 어떤 방식의 접근이던지간에 불편함이나 혼란을 겪고 계신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이 현상들이 그렇게 놀랄일도 영원히 지속되는 현상도 아니며
오히려 외연과 내연이 폭넓어지는 기회가 될수 있을거라고요. ⭐ |
|
|
비순차적 발달
이처럼 각성의 순서가 바뀔 수 있다고 봤기 때문에 사티아난다는 차크라 수련을 시작할 때 아즈나 차크라를 제일 먼저 각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찰하는 능력과 이성적 힘을 가진 아즈나 차크라가 먼저 각성되어야 하위 차크라의 부정적 카르마가 활성화되어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별 차크라가 독립적으로 각성될 수 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모든 차크라를 조화롭게 발달시켜야한다. 만약 하위 차크라를 도외시한 채 상위차크라만 활성화시킬 경우 일시적으로는 영적 단계에 도달한 듯 보이지만 곧 하위 차크라의 덫에 걸려 추락할 수도 있다.
|
|
|
아즈나 차크라에서 나타나는 심령적인 현상들은 파탄잘리 요가수트라가 말하는 싯디(신통력)에 해당한다. 이 경전 3장은 요가 수행자가 얻을 수 있는 신통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 정묘계는 기존의 서구 심리학이 인정하지 않거나 병리적이라고 편단한 정신의 영역이다. 이 단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을 정신병적 증상으로 치부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구의 발달심리학 중에서 이 단계를 설명하는 이론은 거의없다.
개별 차크라의 독립적 각성이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저마다 다른 차크라가 활성화된 상태이다. 이 경우 온전한 발달은 나머지 차크라들을 활성화 시켜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차크라들 간의 조화와 균형적 발달을 촉구하는 수련 방법이나 치료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
|
|
이제부터 제가 네팔에서 배웠던 테라피들을 하나씩 복기해볼께요.
보통 오전에는 철학과 이론을 배우고,
오후에는 파트너와 번갈아가면서 세션을 받고, 또 서로 해줍니다.
하나의 테라피가 약 1시간이 걸리는데
그러다보면 하루에 배울 수 있는 테라피 개수가 한정적입니다.
물론 온전한 세션은 아니더라도
단계를 생략하거나 빼먹은 기억은 없습니다. |
|
|
첫 시간에 Nada Chikitsa에 대해 배우게됐습니다.
(이전편 찬팅을하고 눈물 줄줄 흘린 후… )
Therapy는 무엇인지? Healing이랑 뭐가 다른지? 그렇다면 Treatment는?
What is body, energy and mind?
What is sound? What is music?
오 이렇게 물으니 제가 아는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리고나서
완전 5도, Perfect 5th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에
자 이제 배운대로 네가 직접 해보라면서 스틱을 쥐어주더라고요.
한국에서 한번도 본적 없는 기다란 스틱에
커다란 티벳탄 사이에 사람을 눕혀놓고 하는 테라피였어요
그때까지도 얼떨떨했고 지금 이게 뭐가 뭔지
옆에서 알려주시는대로 어찌어찌 했던게 생각납니다.
전 네팔에 가기전까지 싱잉볼테라피를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습니다.
싱잉볼 첫 시작이 무엇이었냐고들도 묻던데, 이제 제 첫 시작입니다. ㅋㅋ
사진에 찍힌 이 순간요.
그리고 이걸 이렇게 많이하게 될지도 몰랐고요. |
|
|
Balancing Psychic Energy Therapy |
|
|
제가 가장 좋아하고 제일 하고싶은 테라피입니다.
볼 4개와 함께 띵샤를 쓰는 테라피에요. 저의 최애
60-90여분이 걸리는 상당히 긴 테라피인데
이걸 하면 제가 더 heal되는 느낌이 있어서 좋아해요.
이 때 처음 제 파트너를 깊게 이완시켜 재웠는데,
그가 숙면하는 동안 저도 옆에서 명상을 하는데
눈물이 정말 콸콸콸 나더라고요.
저 자신이 굉장히 치유되는 느낌에
그 안정된 에너지와 균형이 너무 좋아서요.
“It heals me.. it works me!”이 말을 했던게 생각나요.
선생님께 “Good healer”라고 칭찬들었던게 생각나네요.
제가 스틱을 들고 연주한 순간과 그 느낌이
지금까지도 굉장히 또렷하게 남아있어요.
뭔가 엉킨 조각들을 조각조각 맞춰서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 같은 기분.
내가 이걸 하는게 처음이 아니라는 확신.
드디어 찾았다는 안도감.
저보고 단 하나만 하라고하면 이 테라피를 하고싶어요.
제가 이걸 배우면서 그토록 치유의 경험을 강렬하게 느꼈다는 것은,
역으로 그 당시에 제 사이킥 바디의 균형이 깨져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제가 요가의 이론을 먼저 공부하고,
여러 수트라를 읽어보고,
또 수행전통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정도 있었다면,
그랬다면 두려움이나 혼란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적인 이해가 감정을 잦아들게하고,
스스로를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도와주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배운 정규교육의 틀 외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었겠죠. |
|
|
판차코샤 : 5개의 덮개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
인간을 다섯 차원의 몸,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껍질’로 이루어진 존재로 본 개념도 있다. 이것은 다차원의 몸에 관한 인도의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중요한 물질이다.
안나마야 코샤 : 음식, 즉 물질로 이루어진 층 프라나마야 코샤 : 생명력으로 이루어진 층으로, 우리 몸의 에너지 또는 기를 의미한다. 마노마야 코샤 : 마음으로 이루어진 층 비즈나마야 코샤 : 마음보다 높은 인식 기능인 지성의 층 아난다마야 코샤 : 지복의 층이다. 이 층은 존재의 가장 깊은 차원으로, 이곳에 머무는 사람은 모든 생각과 인상이 사라져서 평화와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각각의 층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맞물리며 의존하는 계층 구조로 되어 있다.
|
|
|
구루께서 이론과 철학을 강의하실 때
현지의 선생님도 수업을 들으며 받아적고 있었어요.
그녀 하는말이 그는 같은 내용을 상대에 따라 매번 다르게 들려줘서 자기는 들을 때마다 노트하고있다고요. 그는 정말 탈렌트가 다양하다고. 요가, 불교, 힌두교, 오쇼명상, 현대명상, 악기, 샤머니즘 의식…
그래서 전 세계에서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들은 수업은 상당히 이론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불교를 많이 인용해서 진행했다는 걸 알게됐어요.
똑같은 level 1이라도 테크닉은 같다한들
다 다른 내용과 설명으로 전수받았다는 걸요. |
|
|
Sushumna Activation Therapy |
|
|
특히 이 테파리는 수슘나 나디를 활성화하는 테라피였는데
Middle path activation라고 설명해줘서 기억에 남아요.
그 불교교리에서의 ‘중도'요.
사진의 화이트보드에도 'Buddha Path’라고 써있네요.
이 철학을 인간 신체에 반영해서 설명해주고,
또 직접 본인의 몸으로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 같은 방식은 저에게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접근이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돌아와서 공부하다보니 많이 찾게됐습니다. 많아요... 너무도요.. 그저 제가 무지해서 몰랐던 것뿐..
그리고 바로 이게 그 ‘탄트라’라는 것도..) |
|
|
밀교는 인도 요가의 영향을 깊게 받았는데 이에 따라 인간의 몸을 성스러운 것으로 보며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새롭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 전통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원리를 발산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주적 붓다로 우리는 이 원리로 충분히 돌아갈 수 있다.
우리의 외부는 더 이상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버려야 할 미망의 세계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깨달음이 현실화한 세계로,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 모두는 마치 환희의 강에서 목욕을 즐기는 존재이다.
- 티베트 불교문화, 룬둡 소빠 |
|
|
저 역시 파트너가 저에게 테라피를 해줬을때 Third eye,
양 눈썹사이 미간 부분에 특정해서 느낌이 일어났습니다.
"오 진짜 여기 부분에 느낌이 나잖아??"
이러면서 신기해하며 수업을 마쳤는데,
차를 타고 가는길에서 여러 장면들이 우루루- 쏟아지더라고요.
저는 눈을 뜨고있었어요.
아주 빠르게 영화처럼 화면들이 휙휙휙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살았던 장면들이 갑자기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그게 아마도 이런건가 싶었습니다.
그 모든 장면들을 판독해낼 집중력이나 조절력은 없었지만
이게 깊은 의식안에 들어있던 기억들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드라이버와 이야기도하고 주변을 지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백일몽이나 혼침이 아니었습니다. 완전하게 깨어있었어요.
제가 보고있는 잔상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동물도 있고,
다양한 시대와 장소들, 내가 모르는 언어들, 상황들…
하지만 전혀 두렵지 않고 놀라지도 않고 편안했습니다.
'아 이게 inside eye opening이구나' 싶었고,
우선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듣던간에 이해할 수 없을거고 저 또한 이 경험을 분명하게 전달할 자신이 없었기도해서 침묵했습니다. |
|
|
알아차림과 깊은 관조에 푹 잠기면,
우리는 몸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알아차리기 시작합니다. 이 차원을 미세한 몸 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미세한 몸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아마도 탄트라불교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몸을 우리 정신성으로 갖고 들어가야 합니다.
몸은 배척받아서는 안 됩니다.
깨달음, 전환, 치유, 우리가 열망하는 그 무엇이든
몸을 정신성으로 갖고 들어오지 않고는
아무것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몸 안에 치유가 있습니다.
몸 안에 깨달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몸을 치유하지 않고는 치유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신성한 사랑이 될 때,
몸은 말 그대로 녹기 시작합니다.
통로들, 그 안의 차크라들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더 사랑과 용기를 느낍니다.
이 신성한 사랑을 느끼면 마음이 녹기 시작하고
마음 속의 온갖 매듭이 풀립니다.
마음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매듭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도 집착하는 믿음 체계, 사고 유형들이 마음속 매듭입니다. 그런 매듭이 우리를 옭아매고 가두고 고문합니다. 자유와 평화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합니다.
제가 말하는 이런 사랑은 우리의 꽁꽁 얼어붙은 마음과 매듭지어진 마음을 녹이는 순수한 체험입니다.
- 모든 순간 껴안기, 아남 툽텐 |
|
|
아직 남은 싱잉볼 테라피가 한참인데
레터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우선 여기서 멈추고 다음편에 이어서 쓸께요.
궁금한 점이나 등등 언제든 메일주셔도 되고,
1:1 온라인 명상에서 만날 수 있어요🌸 |
|
|
체험적이고 실제적이지만 육체적이지는 않다.
엘리야데(Mircea Eliade)
|
|
|
|